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온책읽기를
하고있다. 제목에 끌려 책을 보게되었다.
p22
학교 오는 풍경으로만 짐작해보아도 윤아네는 함께 걸어오는 시간을 즐긴다. 반대로 진경이네는 오기 싫은 아이를 억지로 데려다 놓는 느낌이다.
아이는 누군가가 옆에서 같이 걸어준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을 즐겁고 기쁘게 걷는다면 얼마나 더 행복할까?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스스로도 그 행복을 즐길 수 있는 부모가 가장 훌륭한 부모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등굣길이나 하굣길의 짧은 시간에도 목표만 생각하고, 쉴 새 없이 가르치려 하고, 당부만 하는 부모들이 있다.
우리 학급이나 교육의 모습도 이와 닮아 있다. 지금 한께 가는 길에서 나눌 것들을 다 버리고 목표만 향해 가다 보면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잃게 되는지 모른다. 목표를 향해 가는길이 즐거워야 설사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충분히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하는 공부도 그렇다. 삶을 풍부하게 하려는 목적을 상실하고 작은 목표만 가득 채우는 수업이나 공부는 대화도 즐거움도 잃어버린 등굣길이나 마찬가지다.
목표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작은 디딤돌이다. 디딤돌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고 다딤돌이 잘 놓여 있는지, 디딤돌을 어떻게 디디며 목적지까지 갈 것인지 생각해보는 수업이 필요하다. 우리 국어수업에서 교과서의 바탕글이나 학습 성취기준은 목표점이다. 목표점에 도달하는 것도 필요하고 목표점을 향해 가는 과정도 의미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목표점을 넘어서서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 즉 배움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살아 있어>>(나카야마 치나쓰, 보물상자) 라는 그림책에서 “아, 살아 있다는 건 자라는 거네.” 라고 했다. 무수생명들은 자라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자란다’라는 말에 방향성과 목적성을 특히 강하게 가지는 것이 안간이다. 그래서 제대로 자라고 싶고, 제대로 자라게 하려고 공부하거나 가르친다. 자신이 자라는 것에 대한 의식과 관심에서 배움의 욕구가 일어난다. 또한 남들이 잘 자라도록 돕기 위해서 가르침이 생겨난다. 이런 배움과 가르침이 하나로 이루어질 때 교육도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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